[기사 원본 바로가기]


의료분쟁조정법 개정법률, 의료 행위에 대한 사법 안전망의 첫걸음



마침내 대한민국 의료 생태계의 복원을 위한 제도적 초석이 마련됐다. 지난 5월 26일 공포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의료분쟁조정법) 개정법률(법률 제21694호)’이 오는 2027년 5월 27일부터 시행된다. 


이번 개정법률은 책임보험, 분쟁조정, 그리고 형사책임 완화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의료 행위의 사법적 안전망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의료사에 한 획을 그은 혁신적 입법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민사적 사안임에도 증거 확보나 상대방 압박을 위해 우선 형사 고소부터 하고 보는 관행이 지배해 왔다. 이러한 ‘의료의 과도한 형사화’는 의사들의 방어 진료를 부추기고 고위험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심화시켜, 결국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번 개정법률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합리적 절충안이다.


우리는 운전할 때 사고의 가능성을 늘 인지하지만, 교도소에 갈 두려움 때문에 핸들을 놓지는 않는다. 자동차 책임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원칙적으로 검사의 공소권이 배제되기 때문이다. 개정법률은 이와 유사한 메커니즘을 의료 현장에 도입했다.


고위험 필수의료의 경우, 책임보험 가입과 사후 설명의무 완수를 전제로 의료인의 형사책임이 원칙적으로 면제(공소권 없음)된다. 일반 의료행위 역시 책임보험에 가입하고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나 법원의 조정이 성립하면 환자 측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이 적용된다.


특히 법률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의료기관 개설자의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한편, 국가가 보험료의 일정 부분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형사책임 완화 조치를 이례적인 특혜라 비판하지만, 글로벌 입법 추세는 이미 ‘의료 과실의 탈형사화’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켄터키주법(KRS 311.283, 2024년 7월 시행)이다. 2017년 테네시주 밴더빌트 대학병원에서 발생한 간호사 라돈다 보트(RaDonda Vaught)의 투약 오류 사망 사건이 촉매가 되었다. 단순 실수가 형사 처벌로 이어지자 미국 의료계는 “실수가 범죄가 되는 현장에는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고, 켄터키주는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한 진료 중 과실에 대해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전향적 입법으로 화답했다. 


이에 비하면 우리 개정법률은 그 대상을 고위험 필수의료로 한정하고 책임보험 가입 및 사후 설명을 조건으로 함으로써, 환자의 권익과 의료인의 진료권을 매우 신중하게 조화시키고 있다.


사후 설명의무의 법제화와 유감 표현의 증거능력 배제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의료사고 직후 환자와 가족이 가장 원하는 것은 진심 어린 소통과 원인 규명이다. 


개정법률은 의료인의 위로와 유감 표명이 곧바로 민·형사상 불리한 증거로 쓰이지 않도록 보호함으로써, 법적 책임을 우려해 침묵하는 대신 환자와 충분히 소통하여 상호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는 조정에 의한 분쟁해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제도가 현장에 안착하기 위한 핵심 열쇠는 결국 ‘신뢰할 수 있는 의료감정’에 있다. 이번 개정법률은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감정 절차를 대폭 강화했다. 환자와 의료인 모두가 결과에 승복하려면, 별도의 큰 비용 없이도 전문 감정위원들이 의료행위의 적절성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조정학회는 그동안 이러한 입법적 전환을 이끌기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왔다. 학회는 의료인의 형사책임 완화를 여러 차례 주창하며 관련 학술대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왔다. 특히 개정법률의 통과를 앞두고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공동으로 ‘의료감정의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학술대회를 개최, 형사책임 면제의 전제인 감정의 객관성 확보에 대한 사회적 주의를 환기시킨 바 있다.


입법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법안이 통과된 만큼 이제는 제도의 안정적인 정착과 하위 법령 정비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한국조정학회는 올가을, 이번 개정법률의 주요 쟁점을 테마로 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의료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수반하는 전문적 영역이다. 최선의 진료를 다하더라도 예기치 않은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러한 위험을 오로지 형사책임으로 해결하려는 접근은 의료인에게도, 환자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개정법률을 계기로 의료인은 불필요한 형사적 불안 없이 진료에 전념하고 환자는 더욱 신속하고 공정한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의료환경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유병현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한국조정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