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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판별 기준, 플랫폼이 정해라?”…국회가 떠넘긴 모호한 입법


오는 7월부터 이른바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 유포를 제재하는 개정 정보통신망법이 시행된다. 하지만 무엇이 허위조작정보인지 판별하는 핵심 기준 설정과 그에 따른 법적 리스크를 정부나 사법부가 아닌 민간 플랫폼 기업들이 떠안게 되면서 현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구체적인 판단 책임을 플랫폼의 자율규제로 뭉뚱그려 위임했기 때문이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를 비롯해 플랫폼 업계에서는 법 시행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소송 리스크 어쩌나”…플랫폼 법률 리스크 우려

13일 KISO 등이 공동 주최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에 따른 허위조작정보 자율규제’ 세미나에서는 이 같은 입법 구조의 한계와 실무적 어려움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이날 법 개정 과정을 발제한 천혜선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에 따르면, 개정 정보통신망법은 고의로 허위조작정보를 유포해 손해를 끼친 경우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또, 반복적인 유포자에게는 최대 1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제재 수단을 강화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이처럼 법적 책임이 따름에도, 정작 처벌의 핵심 근거가 되는 세부 판정 기준은 민간 플랫폼에 미뤄버렸다는 점을 우려했다.

황창근 홍익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국회가 허위조작정보의 개념과 유통 금지 조항을 넣어놓고도 정작 그 판정 기준은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자율 정책으로 정하도록 해놨다”고 비판했다.

황용석 정보통신정책학회 회장 또한 이 같은 입법을 두고 “행정·사법적 판단 절차는 아예 배제한 채 대규모 사업자에게 의무적·강제적 자율 규제를 부과하는 독특한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플랫폼 업계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용자의 게시물을 차단·삭제할 경우 벌어질 소송전을 가장 크게 우려한다. 황 교수는 “개념이 불명확한 허위조작정보에 관해 접근 차단이나 삭제 등의 행위를 하면 소송으로 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사업자로서는 그런 리스크를 안고 갈 수 없기 때문에 (가이드라인 제정 시) 법적 근거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현장의 고충을 대변했다.

악의적 조작 vs 단순 허위, 실무적 판단의 한계

현재의 법구조는 실무적으로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보의 진위를 넘어 게시자의 악의적 의도까지 제3자인 플랫폼이 가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악의적 의도가 있는 허위조작정보만 명확히 구분해 조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오병일 디지털정의 네트워크 대표는 “게시자가 허위조작정보라는 점을 알았는지, 손해를 끼치거나 부당한 이익을 얻을 의도가 있었는지를 제3자인 플랫폼이 판단하기는 사실상 힘들다”고 비판했다. 특히 오 대표는 “허위 정보가 확산되는 요인은 악의적인 이용자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 악의 없이 이 정보를 유용하다 생각하고 유통하는 이용자들 때문”이라며 객관적인 팩트체크 시스템이 부재한 현실을 강하게 지적했다.

정연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역시 일률적인 규정 속에서 고객서비스(CS)를 담당하는 플랫폼의 일반 조직이 고도의 법적 가치 판단을 내리기는 실무적으로 어렵다고 우려를 표했다. 나아가 정 변호사는 “최종적으로 법률적인 의미가 있는 판단을 KISO에서 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 의문”이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하는 것처럼 결국 정부 기관으로 보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짚었다.

‘신고 절차 한정·임시조치’ 등 플랫폼 자구책 윤곽

공적 판단이 빠진 불확실성 속에서 당장 7월 법 시행을 맞닥뜨린 플랫폼 업계는 실무 혼란과 소송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자체적인 방어막과 세부 기준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김민호 KISO 의장은 “당장 7월 7일 법 시행에 맞춰 국내 사업자들이 신속히 조치하려면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공통된 기준을 만들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KISO는 무리한 가치 판단을 지양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의 적용 범위를 ‘신고와 조치 절차’ 위주로 엄격히 한정했다고 밝혔다. 김민호 KISO 의장은 “우선적으로 신고와 조치에 관한 가이드라인으로 한정했다는 점을 양해해달라”고 설명했다.

통신 비밀 침해 우려가 큰 사적 메신저 대화는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오픈채팅에는 규제를 적용하는 식의 구체적인 선 긋기도 논의하고 있다. 실무 부서의 판단이 어려울 경우 30일간의 임시조치를 통해 접근을 막아둔 뒤 사실관계를 파악하거나 KISO로 넘겨 심의하자는 정 변호사의 보완책 제안에 대해서도, 김 의장은 “도입 여부를 적극적으로 고민해 보겠다”고 답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공개된 가이드라인 초안의 주요 내용은 ▲사적 통신 적용 배제 ▲허위 정보 판단 기준 및 예외 ▲부당한 이익(악의성) 구체화 ▲신고 남용 방지 등이다.

나아가 KISO는 이번에 공개된 가이드라인이 완성형이 아님을 강조하며 향후 고도화 계획도 내놨다. 김 의장은 “현재 별도로 운영 중인 불법 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향후 장기 과제로는 (이번 가이드라인을) 불법 정보 쪽과 통합해서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제도가 시행되면서 쌓이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가이드라인에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이날 세미나에서 제기된 학계와 시민사회의 비판을 수렴해 기준을 계속해서 다듬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천 연구위원은 “이번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사업자들이 각자의 자율 운영 정책을 구체화할 것”이라며 “실제 제도를 운영하며 부딪히는 문제들을 바탕으로 사후적인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미나 좌장을 맡은 이희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실적 제약 속에서도 업계의 역할을 당부했다. 이 교수는 “플랫폼들이 각자의 환경에 맞는 다양한 대안을 시도하고 살아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라며 “현실적인 법 집행 상황에서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여전히 용감하게 그 역할을 하실 수 있는 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논의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