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김제완]‘후관예우’ 의구심만으로도 사법 신뢰 흔들린다

최근 대법원이 국회에 제출한 ‘신임 법관 임용 현황’에 따르면, 올해 새로 임용된 경력 법관 153명 중 44.4%가 김앤장 등 로펌 출신이라고 한다. 로펌 변호사가 법관으로 대거 진입하면서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로펌 출신 판사들이 자신이 몸담았던 로펌이 수행하는 사건에 특혜를 부여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는 것이다.
그간은 법원을 떠나 변호사가 된 전관이 특혜를 받는 ‘전관예우’가 문제였다면, 이제는 변호사 출신 판사가 친정 로펌에 유리한 판단을 해주는 ‘후관예우’까지 문제되는 상황이다. 여기서 판사들이 실제로 출신 로펌에 특혜를 주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국민 사이에서 “과연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겠는가”라는 의심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사법부의 신뢰 저하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판이란 최소한 공정하게 보여야 하는 것, 즉 ‘보이는 공정성’이 사법부 신뢰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에 국회는 2020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변호사 출신 판사가 퇴직 후 2년간 자신이 근무했던 로펌의 사건을 담당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미국의 ‘사법윤리규칙(Code of Conduct for United States Judges)’ 등 외국의 법제에서 알 수 있듯이, 법관이 과거 근무했던 기관과 관련된 사건을 스스로 회피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이유로 판사들의 기피나 회피 제도가 사실상 무력화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법관 인사제도와 관련 정책에 대한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개선이 필요한 단계다.
첫째, 판사의 직무 수행에 관해 이익충돌 법리가 강화돼야 한다. 이에 관해 해당 판사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고 의심되는 사건을 단순히 회피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보는 소극적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러한 소극적 제도는 그 효과가 미미할 뿐 아니라, 오히려 특정 판사나 재판부를 피하기 위해 소송 당사자가 인위적으로 특정 로펌을 선임하는 편법으로 악용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과 같이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은 이익충돌이 있을 경우 판사가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로펌을 사임시켜 이익충돌이 없는 다른 변호사가 선임되도록 하고 있다. 우리도 이른바 이익충돌로 인한 변론제한 제도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둘째,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판사들이 퇴직 후 친정 로펌으로 돌아가는 경우다. 그렇게 되면 판사라는 중요한 공직이 전관예우와 후관예우라는 이중의 특혜로 주요 로펌들과 깊숙이 얽히게 된다. 대기업 출신 판사들도 마찬가지다. 특정 대기업 법무팀에 근무하다 판사로 임용돼 근무하는 것까지는 허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퇴직 후 그 기업의 임원으로 복귀하는 것까지 허용돼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판사 퇴직 후 재취업의 허용 범위에 대한 공직자 윤리 정책과 법제의 근본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시험 성적 위주의 경력 법관 선발제도를 전면 재고해야 한다. 법원은 과거 사법연수원 수료자를 바로 임용했지만, 2013년부터는 일정 기간 경력을 쌓은 법조인을 임용하는 ‘법조일원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법조일원화의 목적은 다양성 추구뿐 아니라, 사회 경험 없이 시험만 잘 본 사람들이 주로 판사로 임용되는 현상을 막는 데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시험 성적 위주로 경력 법관을 선발하는 한, 로펌 출신의 젊은 성적 우수자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법조일원화 제도의 도입 취지는 퇴색된다. 전문성을 갖춘 우수한 인력이 판사로 임용되는 것은 필요하지만, 오로지 전문성과 우수성만을 추구한다면 차라리 인공지능(AI) 판사에게 재판을 맡기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 판사들에게 진정으로 요구되는 것은 공직자로서의 윤리 감각, 그리고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되지 않는 건전한 판단력이 아닐까. 이러한 공직 적합성과 상식에 따른 판단력은 단순히 시험 성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법원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신뢰의 위기에 서 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법부의 생각과 감정이 국민과 가까워져야 한다. 사법부가 성적 최우수의 ‘슈퍼 엘리트’만으로 법관을 임용하려 하고, 법관들이 퇴직 후 초고소득 로펌 변호사나 대기업 법무 담당 임원으로 영화까지 누리는 일이 무제한 허용되는 한, 법관과 국민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