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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한스경제 주진 기자 |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노동을 보조하는 시대를 넘어 대체하는 시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생성형 AI는 청년층과 전문직의 진입 일자리를 잠식하고 있고, 피지컬 AI와 자율형 AI는 향후 중장년층의 숙련 노동까지 대체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기업의 인사관리에서도 AI를 활용한 채용·평가·승진·업무배분이 확산하면서 새로운 노동권 침해와 차별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스경제와 만나 AI 시대 노동 전환의 가장 큰 문제를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를 둘러싼 노동 규범과 거버넌스가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것”으로 진단했다.
박 교수는 “기존 제조업 중심의 노동법만으로는 AI 시대의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면서 “노동법이 산업혁명의 변화에 따라 노동 1.0에서 2.0, 3.0으로 발전해왔듯 AI 시대에는 ‘노동 4.0’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 4.0’은 독일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독일의 산업계가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따른 위기의식을 '산업 4.0'으로 표현하자 독일 노동계가 이를 수용하여 노동 영역까지 확장했다. 우리나라의 모델은 독일의 '노동 4.0' 모델을 참고하되, 노동계·경영계·청년·미조직 노동자,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일을 하는 사람의 의견까지 담아내야 한다.
박 교수는 AI 시대의 노동정책은 ‘AI를 도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AI 전환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환을 막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드느냐입니다. 산업 규제 논리에만 매달리다가 AI 거버넌스의 규칙을 만들 기회를 놓친다면 그 대가는 엄청날 수 있습니다.”
― AI가 노동시장에 미칠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가장 분명한 것은 노동력 대체입니다. 과거에는 AI가 인간의 일을 보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AI를 조교나 비서처럼 활용하면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었죠.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충격은 청년층에서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AI가 자료 수집, 초안 작성, 단순 분석 등 과거 신입사원이 담당하던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걱정되는 것은 청년들의 신규 채용입니다. AI로 새롭게 생기는 일자리는 산술적으로 늘어날 수 있지만, AI 때문에 사라지는 일자리는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특히 전문직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박 교수는 로스쿨 졸업생의 취업 사례를 들며 “AI가 과거 1~2년 차 변호사가 담당하던 자료 수집이나 1차 초안 작성 등을 상당 부분 수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청년들이 직장에 진입해 경험을 축적할 기회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 AI대전환기 청년 일자리 감소가 왜 심각한 문제인가.
“단순히 일자리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면 경험과 숙련을 축적할 기회를 잃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인적자본의 장기적인 손실입니다.”
그는 특히 AI 시대에는 ‘축적의 시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입사원이 조직에서 자료를 만들고, 일을 배우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숙련된 인력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AI로 인해 끊길 수 있다는 것이다.
“20대에 경험을 축적하지 못하면 30대, 40대의 경쟁력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미래 세대가 성장할 수 있는 일자리의 사다리가 사라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박 교수는 현행 기간제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열어 놓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력직 채용 시장이 보통 3~5년의 경력을 요구하는데, 기간제 근로는 2년 상한에 묶여 있어 청년이 충분한 경력을 쌓기도 전에 다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이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숙련된 청년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좋은 모델이라며 삼성이 2018년 개설한 삼성청년SW·AI아카데미(SSAFY)를 성공모델로 꼽았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13기까지 이 코스를 거쳐 수료한 인원은 누적으로 약 1만1000명에 달하고, 이곳의 수료생들의 누적 취업률이 약 85%에 이른다.
박 교수는 "기업들이 단순히 사회공헌 프로그램 차원에서 기초적인 교육을 하는 단계를 넘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면서 "삼성의 성공 모델을 다른 업종으로 확산시킨다면 인재 육성뿐만 아니라 실제 고용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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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노동법으로 AI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어렵습니다. 노동법은 산업혁명과 함께 발전해왔습니다. 1차 산업혁명 때는 장시간 노동과 아동 노동을 규제하는 노동 1.0이 만들어졌고, 2차 산업혁명 때는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이라는 노동 2.0이 발전했습니다. 3차 산업혁명에서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중심으로 노동 3.0이 형성됐습니다.”
박 교수는 AI 시대에는 노동 4.0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노동 2.0에 머물러 있습니다. 3.0의 핵심인 노동자 대표의 실질적인 경영 참여도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AI라는 거대한 변화를 맞고 있는 겁니다. 2.0의 수단으로 4.0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니 파열음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기존 제조업 중심의 노동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AI와 플랫폼 노동이 확산하면서 노동의 시간과 공간, 형태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 AI가 기업의 인사관리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미 채용부터 평가, 승진, 업무배분, 성과관리까지 AI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AI가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블랙박스’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AI가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해 채용과 평가를 한다면 기존의 차별이 오히려 새로운 방식으로 재생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그동안 채용 과정에서 성별이나 나이 같은 차별 요소를 없애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AI가 과거 데이터를 학습한다면 과거의 편견을 그대로 재생산할 수 있습니다. 왜 채용됐는지, 왜 승진에서 탈락했는지, 왜 해고됐는지 설명할 수 없다면 불만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알고리즘 편향과 상시적인 디지털 감시를 주요 위험으로 꼽았다. 업무용 컴퓨터의 마우스 사용량, 화면, 위치, 표정과 음성 등 다양한 정보가 노동자 평가에 활용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 EU의 AI 규제에서 우리가 참고할 부분은 무엇인가.
“유럽연합(EU)은 2024년 ‘인공지능법(AI Act)’을 통과시켜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해 데이터에 반영된 편견에 의해 차별이 발생하는 ‘데이터 편향 제거’,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투명성’, AI에 의한 판단이 차별을 조장하는지에 대한 ‘영향평가’를 의무화했습니다. EU는 AI 법과 기존 노동법 규범의 조화를 명시적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특히 채용·선발·업무배분·성과평가 등에 사용되는 AI를 고위험 영역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AI의 위험을 사전에 평가하고, 노동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AI 기본법과 노동법이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 AI 활용이 확대되면 근로자 간 격차도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AI를 도입했다고 모두가 같은 생산성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잘 쓰는 사람이 훨씬 잘 쓰게 됩니다. 결국 AI 활용 능력에 따른 생산성 격차가 발생합니다.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성과 격차가 벌어지면 보상체계도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뒤처진 70%의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업이 AI를 도입하면서 동시에 노동자의 AI 리터러시를 높이는 정책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독일 연방노동부는 ‘디지털 역량 강화 협약’을 통해 기업이 AI를 도입할 때 노동자에게 교육과 재훈련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 AI 도입을 둘러싼 노사 갈등도 커질 수 있지 않나.
“AI 도입을 파업이나 교섭의 대립 의제로만 접근해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파업 등으로 전환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전환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 산업의 경쟁력과 근로자의 AI 활용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AI 전환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협력적 거버넌스’입니다. 기업이 AI를 도입할 때 노동자 대표에게 사전에 정보를 제공하고 협의하도록 해야 합니다. 노동자 대표가 AI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성도 갖춰야 합니다.”
그는 AI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노동자 대표가 기업의 AI 도입과 운영 과정에 참여하는 구조를 제안했다. 특히 중소기업은 별도의 전문가를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전문 노무사 등 외부 전문가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결국 AI 시대 노동법의 핵심은 무엇인가.
“AI를 막는 것이 답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AI가 시키는 대로 모든 것을 맡겨서도 안 됩니다. 인간과 AI가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가 핵심입니다.”
그는 노동법의 역할도 ‘사후적 분쟁 해결’에서 ‘사전적 예방과 참여’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문제가 생기면 노동위원회나 법원으로 가서 해결했습니다. AI 시대에는 그렇게 해서는 늦습니다. 기업이 AI를 도입하기 전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노동자와 함께 점검하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협의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중심에 노동자 대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결론이다.
“AI 거버넌스는 노동자 대표를 중심축으로 구축해야 합니다. 기업에는 법적 안정성과 AI 도입의 속도를 보장하고, 노동자에게는 권리 보호와 편익을 보장하며, 사회에는 청년 세대를 포함한 지속 가능한 노동시장을 만드는 겁니다. 이것이 AI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사회적 대타협입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려대 법학 학‧석사, 독일아우크스부르크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前 노동법이론실무학회 회장 △前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 △前 한국사회보장법학회 회장 △前 고용노동부 고용보험위원회 위원 △前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전문가그룹
주진 기자 jj72@sporbiz.co.kr
출처 : 한스경제(http://www.hans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