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젊을 때 과감히 문을 두드려라”…노희완 변호사의 국제무대 도전기
개발도상국의 통상 법령과 규제 제도 개선을 지원하는 업무부터 국제통상·무역 사건을 다루는 업무까지, 노희완 변호사의 경력은 줄곧 국경을 넘나들었다. 그에게 국제기구 진출 과정과 글로벌 법률시장에서 체감한 한국 법조인의 경쟁력, 그리고 국제무대를 꿈꾸는 로스쿨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을 들어봤다.

국제기구 진출부터 실무까지…IDB에서 넓힌 법조인의 시야
Q. 고려대 로스쿨 졸업 후 미주개발은행(IDB, Inter-American Development Bank)에서 3년간 근무했다. 국제기구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로스쿨 졸업 후 여러 국가의 규제와 절차가 얽힌 국경 간(cross-border) 사건들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이라는 한쪽 당사국의 입장이 아니라 국제적인 무대 그 자체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사건들을 진행하다 보니 다자간 규범과 각국의 제도가 어떻게 설계되고 작동하는지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졌고, 그런 관점에서 개발도상국의 제도를 함께 만들고 개선하는 국제개발금융기구의 업무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마침 2020년 말 내가 쌓아온 관련 경력에 맞는 자리에 지원할 기회가 생겼고, 그렇게 미주개발은행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Q. 미주개발은행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담당했나.
미주개발은행은 다자간 지역개발금융기구로,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의 경제·사회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26개 차입국의 공공 부문에 개발 차관을 지원한다. 나는 주로 카리브해 지역 국가들을 상대로 두 축의 업무를 담당했다. 하나는 이들 국가의 정부를 대상으로 상품·서비스·외국인 투자와 관련된 통상 법령의 제·개정을 자문하고 관련 규제 프레임워크를 검토·설계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책기반차관(policy-based loan), 보증, 기술협력, 담보 패키지 등 국가보증부(sovereign-guaranteed) 금융 거래의 구조화와 협상, 실행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베이도스 정부에 대한 차관 지원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가 특별히 규모가 크거나 화려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처음으로 설계(design) 단계부터 마지막 차관 지급(disbursement) 단계까지 전 과정을 온전히 맡아 진행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대체로 큰 거래의 일부 국면만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프로젝트에서는 거래 구조를 어떻게 짤지 고민하는 초기 단계부터 정부 측과의 협상, 조건 충족 여부 검토, 실제 자금이 집행되는 순간까지 전 과정을 직접 따라가며 책임졌다.
하나의 거래가 어떻게 시작되고 완결되는지를 처음으로 끝까지 지켜보면서, 각 단계에서의 법률적 판단이 실제 자금 집행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몸으로 익힐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내 성장에 가장 큰 의미가 있었던 프로젝트로 기억에 남는다.

Q.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며 가장 크게 배운 점은 무엇인가. 법조인으로서 시야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해외에서 근무한 경험이 전혀 없었던 나에게는 다양한 배경과 인종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업무를 진행하고, 한국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 자체가 큰 배움이었다. 무엇보다 크게 달라진 것은 법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그전까지 나에게 법은 주로 특정 의뢰인의 이익을 방어하고 관철하기 위한 도구에 가까웠는데, 개발금융기구에서는 법과 제도가 한 나라의 경제와 사회를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고 바꾸는지를 훨씬 넓은 시야에서 보게 됐다.
또 하나 배운 점은 정답을 찾는 것만큼이나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여러 당사자 사이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사안을 두고도 국가마다, 부서마다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옳은 결론을 제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실제로 실행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조율하는 역량이 필요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법조인으로서 조금 더 균형 잡히고 실용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느낀다.
Q. 국제기구 취업은 어떻게 준비했으며, 실제 채용 절차와 합격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요소는 무엇인가.
경력 2~3년 정도의 초년 차 지원자에게는 전문적인 업무 역량이나 지식을 평가하기보다는 지원 동기나 기존 구성원들과의 합(fit)을 주로 보는 것 같다. 채용 절차는 보통 서류 전형을 통과하면 3~5명의 면접관이 참여하는 다대일 인터뷰를 한 차례 이상 거치고, 그 사이에 지필 평가 등이 진행될 수 있다. 나도 지필 평가를 봤는데, 기관에 따라 이를 생략하거나 발표 평가만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인터뷰는 모두 영어로 진행되며, 기관에 따라 필요한 경우 제2외국어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한다.
각 국제기구 홈페이지에 연중 상시로 올라오는 채용 공고에 개별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방법을 통해 바로 채용되기는 다소 어렵다. 대한민국 국적의 지원자라면 JPO(Junior Professional Officer)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외교부와 재정경제부에서 기관별로 각각 채용 절차를 진행하는데, 외교부 국제기구인사센터와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기구 정보시스템에 매년 관련 공고가 올라온다. 통상 3월경 공고가 나고 연말에 지원 절차가 종료되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이전 공고를 살펴보면서 어떤 기관에서 어떤 직무를 채용했는지 미리 파악해두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만 매년 채용하는 기관과 직무가 다르기 때문에 특정 기관을 목표로 미리 준비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본인이 쌓아온 경력에 맞는 기관과 직무의 공고가 올라왔을 때 지원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준비 과정 자체는 일반 기업 취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직접 채용 과정을 경험하고 다른 직원을 뽑는 절차에도 관여해보니, 서류 전형을 통과한 이후에는 인터뷰가 가장 중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보통 한 명을 채용할 때 4~5명 정도가 인터뷰 대상자로 올라간다.
국제기구에서 뉴욕 로펌으로…통상 실무의 최전선에서
Q. 국제기구에서의 경험 이후 미국 LL.M. 과정에 진학했다. LL.M.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막연하게나마 언젠가 한 번쯤은 영미권 로펌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이를 위해서는 미국 LL.M. 과정에 진학해 미국 변호사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 LL.M. 과정을 통해 미국 로스쿨의 학업과 생활 전반은 물론 네트워킹과 취업 과정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최종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 경험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지원하게 됐다.
Q. 현재 미국 뉴욕 소재 Huth Reynolds LLP에서 어쏘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로펌에 대한 소개와 현재 맡고 있는 업무를 설명해 달라.
Huth Reynolds LLP는 국제통상·무역, 공정거래 등의 분야에 특화된 부티크 로펌이다. 미국 국제무역법원(Court of International Trade), 연방항소법원(D.C. Circuit), 연방해사위원회(Federal Maritime Commission) 등에서 진행되는 국제통상·무역 사건에서 다양한 미국 내 수출입기업을 대리하고 있으며, 운송사·철도회사·터미널 등 공급망의 여러 참여자에게 관련 규제 준수에 관한 자문을 제공한다.
나는 어쏘 변호사로서 이러한 소송 사건에 참여하는 한편, 통상 규제와 최근 급변하는 미국 관세 정책(무역확장법 232조, 통상법 301조, IEEPA 관세 등)에 대한 수입업체들의 대응 전략 수립과 환급 소송 업무를 맡고 있다. 국제 공급망에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매년 막대한 양의 재화와 서비스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아시아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이 분야에서 일하는 데 강점이 되는 것 같다. 이와 더불어 OECD 무역농업국의 서비스무역제한지수(Services Trade Restrictiveness Index) 개정이나 EU 집행위원회의 시장접근 데이터베이스(Access2Markets) 갱신 자문 등 국제기구를 상대로 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Q. 국제거래와 무역 분야는 최근 관세 정책과 경제안보 이슈 등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실무 현장에서 체감하는 주요 이슈는 무엇인가.
체감상 최근 몇 년간 이 분야만큼 빠르게 변한 영역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무역확장법 232조(철강·알루미늄 등)나 통상법 301조(중국산 물품) 관세는 물론이고, 공급망·경제안보 차원에서 UFLPA(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나 수출통제까지 실무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가 계속 늘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금 가장 큰 현안은 IEEPA(국제긴급경제권한법) 관세 환급 문제다. 올해 2월 20일 연방대법원은 대통령이 IEEPA를 근거로 관세를 부과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했다. 약 33만 개의 수입업체가 5,300만 건이 넘는 수입 신고에 걸쳐 약 1,660억 달러의 IEEPA 관세를 납부한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판결 이후 실무의 무게중심은 관세 환급 문제로 옮겨갔다.
국제무역법원(CIT)은 세관국경보호청(CBP)에 환급을 명령했고, CBP는 CAPE(Consolidated Administration and Processing of Entries)라는 전용 환급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가장 첨예한 쟁점은 개별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수입업체도 이미 확정된 수입 건에 대해 환급받을 수 있는지 여부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이 환급을 구하는 소장을 작성하는 일이다.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업체들도 확정 여부와 관계없이 CAPE 환급 절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집단소송 인증(class certification) 문제를 두고 심리가 예정되어 있어, 그 결과에 따라 실무 대응 방향이 또 한 번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판결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속 절차와 행정 시스템, 항소가 실시간으로 맞물려 돌아간다는 점이 이 분야의 특징이자 어려움이라고 느낀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아도, 기회가 오면 도전해야
Q. 해외에서 활동하며 느낀 한국 법조인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반대로 국제무대에서 더욱 갖춰야 할 역량이 있다면 무엇인가.
한국 법조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주어진 문제를 정확하고 꼼꼼하게 파고드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느꼈다. 복잡한 사안을 짧은 시간 안에 분석해 정돈된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성실함과 완성도는 어느 나라 변호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여기에 한국어와 영어를 오가며 한국 기업과 국제 실무를 연결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한 강점이다.
다만 국제무대에서 더 갖추면 좋겠다고 느낀 부분도 있다. 우선 정답을 정확히 찾아내는 것을 넘어, 그 답이 실제 비즈니스와 상대방의 입장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까지 먼저 짚어주는 능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또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인 팀에서는 자기 의견을 분명히 밝히고 자연스럽게 관계를 만들어가는 자세, 즉 지시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제안하고 목소리를 내는 태도가 크게 평가받는다. 언어 능력 자체보다 문화적 차이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역량을 함께 키우는 것이 국제무대에서는 특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앞으로 국제통상·무역 분야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지금 다루고 있는 국제통상·무역 분야에서 전문성을 더욱 깊이 쌓아, 급변하는 통상·경제안보 환경 속에서 한국 기업과 국제 규제 체계를 신뢰할 수 있게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 관세, 공급망, 무역구제처럼 제도가 빠르게 변화하는 영역일수록 양쪽 제도를 모두 이해하는 실무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고 느낀다. 궁극적으로는 실무 경험과 학술적 논의를 오가며,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국제통상 규범이 만들어지는 데 작게나마 기여하는 것이 목표다.
Q. 마지막으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법조인을 꿈꾸는 로스쿨 재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가능한 한 젊을 때 도전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국제무대는 멀리서 보면 진입 장벽이 아주 높아 보이지만, 막상 부딪혀 보면 생각보다 열려 있고 한 번의 도전이 예상치 못한 다음 기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30대 초중반 이하의 지원자를 우대하는 경로도 많기 때문에, 이러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준비한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처음부터 정해진 길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눈앞에 온 기회에 지원하며 여기까지 왔다. 당장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가 아니어도 괜찮다.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경력도 결국 자신만의 강점이 되고, 어학과 전문성은 경험을 쌓다 보면 함께 자란다. 그러니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젊을 때 과감히 문을 두드려 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