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전문시대 교과서 번역 사업이 계속되고 있다. 이 사업은 2017년 2월 신우선 저 "민법총칙"을 고려대학교 명순구 교수가 번역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고, 2018년 10월에 유치형 저 "물권법 제1부"가 출간되었다.


아래 물권법 제1부의 번역자 명순구 교수의 머리말을 소개한다.


1905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는 두 개의 학과(법률학전문과, 이재학전문과)로 개교했다. 1905년 즈음 위 학문을 전수하는 교육기관으로서 보성전문이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설립된 고등교육기관 중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온 것은 보성전문이 유일하다. 대한민국의 학문사에서 보성전문과 고려대학교가 가지는 위상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1905년이라는 시기는 우리 국가와 민족이 자존심을 짓밟혀가며 매우 고단하게 역사를 이어가던 시기이다. 아울러 우리나라에 자의타의로 근대 학문이 밀물처럼 밀려든 시기이기도 하다. 그 격동의 시기에 설립된 보성전문은 이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일꾼들을 길러내기 위하여 근대적 실용학문을 본격적체계적으로 교수한 고등교육기관이다. 그러므로 보성전문에서 시행된 교육과 연구는 대한민국의 학문사(學問史)에 진한 방점을 찍어야 할 부분이다. 이와 같이 보성전문의 교과서는 우리나라 근대 학문의 초기 모습을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그러나 많은 한자어, 언문일치가 되지 않은 문장 스타일, 종서 형식의 인쇄 등으로 인해 요즘 사람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보성전문 교과서 번역 사업은 학문을 하는 사람들과 자료를 공유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이 사업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법학경제학경영학의 초기 모습을 정확히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보성전문 교과서 번역 사업이 성숙 단계에 이르면 저자에 관한 연구, 교과서의 계보에 관한 연구 등 심도있는 후속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업은 대한민국 학문사의 시계바늘을 지금보다 훨씬 뒤로 돌려 학문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재 고려대학교 학칙에 해당하는 私立普成專門學校規則(1905) 5조가 일반교과서는 각 담임강사가 편술한 것을 출판·교수하되 이를 강의록이라 부를 것이라고 규정한다든가, 24조가 재학생은 결석 여부를 불문하고 매월 5일 이내에 학비금 1원을 본교에 납입할 것. 다만 때에 따라 강의록대금으로 바꾸어 부르되 그 금액은 수시 산정할 것이라고 규정한 것을 보면, 각 교과목마다 교과서를 구비했거나 아니면 최소한 교과서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출간하는 “1905” 22권은 󰡔物權法 第1󰡕이다. 보성전문 교과서 물권법은 제1부와 제2부의 두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물권총론, 기본물권(점유권소유권), 용익물권을 설명하며, 2부는 담보물권을 다룬다. 대부분의 보성전문 교과서가 그러하듯 󰡔物權法 第1󰡕에도 저자가 유치형(兪致衡)이라는 것 외에는 출판연도출판사 등 다른 출판사항에 대한 기록이 붙어있지 않다. 저자 유치형은 보성전문 창립기의 강사 14명 중 한 사람이다.

 

이 책은 1898년부터 시행된 일본민법전을 기준으로 한 교과서이다. 그런데 현행 대한민국 민법(1958 제정, 1960 시행)이 큰 틀에서는 일본민법전을 대폭 참고한 것이어서 대체적인 체계와 내용은 지금 보아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한편, 구체적인 용어에 있어서는 당시 일본법의 용례에 따르다보니 현행 민법과 차이가 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경우에는 대체로 우리나라 법학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재 한국의 법률용어로 변경했다. 또한, 원문에는 매우 긴 문장이 많다. 당시의 일반적 서술 방식에 따른 것인데, 이는 요즘 사람들의 눈에 익숙하지 않다. 그리하여 긴 문장으로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해당 문장을 끊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경우에 따라 역자주를 추가한 것도 또한 독자들의 편의를 고려한 것이다. 그리고 책의 구성은 왼쪽 면에 원문을, 오른쪽 면에는 그에 해당하는 번역문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하였다. 책 표지는 가급적 원 자료의 분위기를 살리고자 했다. 한지의 색감을 유지하면서 실로 묶는 방식으로 제본한 모습을 표현하였고, 제목의 글자도 원 자료의 글자를 그대로 재현했다.

 

이 번역서가 나오기까지 여러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우선 유휘성 회장님께서는 仁星基金으로써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연구진흥기금을 조성해 주셨다. 유 회장님의 후원이 없었다면 이 사업을 시작할 수 없었다. 특히 仁星基金으로 인하여 보성전문 교과서 번역사업을 완결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점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사업성과 무관하게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해 주신 고려대학교 출판문화원의 윤인진 원장님과 김철 과장님, 정성스럽게 편집 작업을 수행해 주신 이무희 선생님, 원문의 활용을 위하여 기꺼이 행정적 수고를 베풀어 주신 고려대학교 도서관의 한민섭 과장님, 스캔과 번역 작업에 큰 힘이 되어 준 김한빈 법학석사와 윤해진 조교, 이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역사는 자기 정체성 인식의 출발점이다. 역사는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기억하며 가꾸는 사람들의 것이다. “1905” 22권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이 책이 고려대학교의 역사를 넘어 대한민국의 학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보다 큰 영광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