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여러분,

여러분을 대하니 44년 전 따스한 봄날에 이 안암의 언덕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위한 첫발을 내딛던 입학식의 그 순간이 떠오릅니다.


설렘과 기대그리고 두려움이 교차하는 가운데이곳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어떤 성취를 이룩하고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매우 희미하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전망 앞에 서 있었다는 것이 상기됩니다저와 달리 여러분은 법률가의 길을 가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이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소명이 분명한 만큼 확고한 목표점이 있고 그 목표에 도달할 방법만이 문제일 것입니다.


얼마 전에 여러분 앞에서 강조한 것처럼법학은 결코 잡다하고 복잡한 법률지식의 총합이 아니며자유와 평등이라는 기준점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조화점을 찾아 궁극적으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의 체계입니다따라서 공부하게 되는 개별 제도나 개념이 왜 필요한 것인지그 제도나 개념에 어떤 법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는지를 끊임없이 숙고하여야 합니다.


우리 헌법을 지배하는 근본원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민주주의 원리와 법치주의 원리입니다민주주의는 그 역동성으로 인하여 다수와 소수의 위치가 변동하거나 변동할 가능성을 유지하면서 소수세력의 견제 위에서 다수세력의 지배를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우리 사회가 기준점으로 삼아야 할 정의의 내용이 어떠하여야 하는지에 관한 의견의 차이가 극복되고그 마지막 결과물로서 입법행위로 완성되는 법률이 탄생하게 됩니다그러므로 법률은 민주주의 원리에 터 잡아 구체화된 정의의 기준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따라서 최대한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법률이라고 하더라도법률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규율로 인하여 그 구체적인 의미에 관하여 해석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구체적인 상황에서 입법자가 의도하였던 법의 정신이 제대로 실현될 수 없는 때도 있으며심지어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때도 있습니다법률의 내용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 등으로 그 유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상황에서 법률가는 법의 해석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구체적인 상황에 합당한 보다 정교한 구체적인 정의를 찾게 됩니다법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입법자의 권한을 함부로 침해하여서는 아니 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가는 구체적인 법의 형성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이와 같은 법률가의 역할을 통하여 실현되는 법치주의는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법률가가 왜 개별 실정법에 관한 단순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그쳐서는 아니 되고법의 정신에 천착하여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고려대학교는 진리의 전당에 머물려고 하지 않습니다진리보다 자유정의의 가치를 앞세운 이유를 생각하여 보기를 바랍니다고려대학교가 세워졌을 때 설치되었던 두 개의 학과 가운데 하나가 법학을 가르치는 학과였습니다고려대학교는 진리를 깨우쳐 자유정의를 실현하는 인재를 양성하고자 합니다이렇게 자랑스러운 건학이념과 전통을 가진 이 학교에서 자유평등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진리를 마음껏 깨우치기를 바랍니다.


법학을 공부한 것이 저에게는 평생 더 할 수 없는 기쁨과 긍지의 원천이었습니다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여러분도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언제나 건강과 축복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 2월 25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김창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