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우 협회장이 지난해 10월 21일 서울 역삼동 대한변협회관 18층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검사평가제 실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하 협회장은 "2005년부터 올해 6월까지 검찰 수사와 관련해 자살한 사람이 모두 100명에 달한다"며 "이것이 검사가 국민으로부터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A변호사는 피의자 B씨의 공범 혐의를 받고 있던 C씨의 변호를 맡아 검찰청에 갔다가 검사실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사연은 이렇다. C씨가 담당 검사에게 "B씨의 법위반 사실을 사건 당시에는 몰랐다"고 진술하자 검사는 C씨에게 "그래서 알았다는 거지?"라며 반복해 신문했다. 조사를 받는데 동석한 A변호사는 검사에게 "C씨가 언제 법위반 사실을 알게 됐는지 여부가 핵심이니 알게 된 시점을 특정해서 질문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검사는 A변호사에게 "재판할 때도 핵심이 어떻고 그래?"라며 면박을 준 뒤 A변호사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며 피의자가 보는 앞에서 A변호사를 쫓아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하창우)가 사법사상 처음으로 '검사평가'를 한 결과 일부 검사들의 잘못된 수사 행태의 민낯이 드러났다. 대한변협은 지난해 10월 21일부터 올 1월 15일까지 약 3개월간 2015년 수사·공판사건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평가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438명의 변호사가 참여해 1079건의 검사평가표를 제출했다.

대한변협은 19일 '검사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변호인 참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피의자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검사도 상당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 '플리바게닝(유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증언하는 조건으로 처벌 수위를 낮춰주는 것)'을 시도하거나 고소 취하를 종용하고 자백을 유도하는 경우가 주로 지적됐다. 또 피의자를 모욕하거나 책으로 책상을 내려치고 연필을 책상에 던지는 등 강압적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피의자에게 수갑을 채운 채 조사를 진행하는 등 인권침해가 우려되는 사례도 발견됐다. 피의자신문에 참여한 변호인의 메모를 금지하거나 정당한 변론권을 제한하는 사례도 있었다.

대한변협은 또 검사가 수사관을 통해 피의자에게 자신의 친인척인 변호사를 알선한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사건을 맡고도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았으며 실제 이 사건의 피의자는 검사의 친인척인 변호사를 선임하고 얼마되지 않아 벌금형에 약식기소만 됐다고 변협은 설명했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검사평가 결과에서 일선 검사들의 잘못된 수사 행태가 드러난 이상 개선이 불가피하다"며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이번 검사평가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 자질없는 검사를 수사에서 배제하고 검사들이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도록 일선 수사 방식을 대대적으로 개혁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대한변협은 '우수검사'로 평가된 수사검사와 공판검사 각 5명씩 10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수사검사 부문에서는 변수량(44·사법연수원 32기) 서울중앙지검 검사가 최우수 검사에 뽑혔다. 같은 검찰청의 차상우(46·35기), 최인상(46·32기), 장려미(34·38기), 김정환(41·33기) 검사도 순서대로 우수검사 2~5위에 선정됐다.

'공판검사' 부문에는 채필규(33·변호사시험 2회) 서울중앙지검 검사, 박하영(42·31기) 청주지검 부부장검사, 추장현(36·37기), 김영오(42·34기), 오선희(43·37기) 서울중앙지검 검사가 순서대로 1~5위에 선정됐다.

대한변협은 하위 평가를 받은 검사의 실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본인에게 직접 결과를 통보할 계획이다. 또 검사평가 결과를 인사자료로 삼도록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에게도 전달할 예정이다.
 
이번 검사평가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변호인으로 검찰 수사나 재판 과정에 직접 관여한 변호사가 '수사검사'와 '공판검사'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변호사가 소속 지방변호사회의 온라인 검사평가프로그램에 접속하거나 수기 방식으로 설문조사 형태의 검사평가표를 작성해 제출하면 변협이 각 지방회의 결과를 취합하는 것이다. 다만 서울변회의 경우 대한변협이 서울변회로부터 위임을 받아 직접 평가 결과를 모았다.
 
평가 항목은 △윤리성 및 청렴성(15점) △인권의식 및 적법절차의 준수(25점) △공정성 및 정치적 중립성(15점) △직무성실성 및 신속성(15점) △직무능력성 및 검찰권행사의 설득력(15점) △친절성 및 절차진행의 융통성(15점) 등 모두 6개다. 항목마다 A(매우 좋다), B(좋다), C(보통이다), D(나쁘다), E(매우 나쁘다)의 5등급으로 점수를 매겼다. 

손현수 기자  boysoo@lawtimes.co.kr 입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