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변호사시험법'에 따르면 변호사시험(이하 ‘변시’)은 검정시험이다, ‘검정’은 일정 수준에 대한 절대평가라는 점에서 상대평가를 수반하는 ‘선발’과 구별된다. ‘검정’은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 제도의 취지와도 맥을 같이한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 로스쿨에 글로벌 개념은 없다. 미래를 위한 학문도 없다. 오직 변시 준비만이 압도한다. 로스쿨 시행 10년의 결과가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 근본원인은 변시이다. 변시가 선발시험으로 운영되면서부터 예상했던 결과이다. 변시는 바람직한 법학교육을 견인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II. 현행 제도에 대한 평가
<1> 목적성을 상실한 판례 암기:
현재 변시는 수많은 판례 암기를 요구한다. 물론 법원리와 연계된 핵심 판례는 암기해야 한다. 그런데 변시는 많은 경우에 말단실무적 판례도 요구한다. 학원이 아닌 대학교에서 변시에 정확하게 맞춘 수업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정규수업과 따로 변시를 준비한다. 이는 로스쿨 제도에 대한 일반인의 불신을 야기하는 주요 원인이다. 이 병리적 현상은 정답시비 또는 변별력을 위한 예방조치에서 비롯된다. 더 구석에 숨은 판례가 시험장으로 들어오게 된다.

< 2> 전문과목·실무과목의 유명무실화:
변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전문과목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변시의 현실은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배점으로 인해 과락만 면하면 되는 과목으로 인식된 지 오래이다. 게다가 선택의 대상도 특정과목으로 극히 편중되어 있다. 기록형 시험은 어떤가? 기록형 시험은 로스쿨의 실무교육 내지 미래의 실무와 거의 연계되어 있지 않으며, 사례형 시험과의 차별성도 모호하다.


III. 변호사시험 개선: 단계별 제안
<1> 제1단계:
여기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변경 없이도 개선할 수 있는 사항을 중심으로 제안한다.
① 필수과목 시험에서 출제대상 판례의 제한: 첫 단계에서는 판례를 모범으로 하는 출제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고 변시의 궁극적 개선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출제 대상 판례를 제한할 것을 제안한다. 판례 제한의 취지에 공감한다면 구체적인 방식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변시 출제대상 판례를 제한하자는 것이지 로스쿨 수업도 그것에 한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로스쿨에서는 핵심 판례에 관한 법이론 및 관련 판례도 다루게 될 것이다. 학생들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면서 순수이론적 기초에서부터 현대사회의 특유한 법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양식이 필요하다고 느낄 것이다.

② 필수과목 출제대상 판례의 제한과 시험유형별 고려 사항:
제한된 판례만으로 출제·채점을 수행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이슈는 시험 유형에 따라 그 상황이 상이하다. 우선, 선택형 시험의 경우에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만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선택형에 대해서는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P/F 방식으로 평가하고, 탈락한 수험생들은 후속 시험에 응시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선택형과 사례형·기록형 시험 사이에 시간 간격을 둘 필요가 있다. 재학 중 일정 시점을 잡아 선택형 시험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사례형·기록형 시험의 경우를 본다. 이 경우에 종전과 다른 방식의 출제가 불가피하다. 많은 판례의 결론을 알고 있는지를 묻기 위해 여러 문항으로 쪼개어 묻고, 판례의 암기 여부를 중심으로 한 채점방식은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출제는 선택형 시험과 달리 크게 어려울 것이 없다. 이미 주어진 소수의 판례만을 이용해서도 얼마든지 훌륭한 출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례형 시험에서는 판례의 결론이 아니라 그 결과가 도출되기까지의 과정을 중요하게 평가해야 한다. 기존 학설이나 판례를 이용하되 미세한 변화를 주었을 때 그에 대응하는 능력도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③ 전문과목(선택과목) 시험의 개선:
변시에 선택과목을 포함시킨 원래의 취지에 부합하려면 모든 로스쿨에서 선택과목 수업이 충실히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에 선택과목을 변시에서 배제하자는 제안도 있다. 그리 되면 로스쿨에서 전문과목은 철저히 외면당할 것이다. 선택과목을 변시에서 제외하고 학점이수제로 변경하는 방식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 2> 제2단계:
선택형·사례형·기록형으로 구분하여 검토한다.
① 선택형 시험의 경우: 제1단계의 개선(자격시험화)을 거쳐 종국에는 선택형 시험을 폐지할 것을 제안하다. “변시에서 왜 선택형 시험이 필요한가?”에 대하여 가장 빈번한 답이 어쩌면 “선택형 시험은 원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일지도 모른다. 깊이 생각해 보면, 선택형 시험이 추구하는 변별력은 미래 법률가에게 필요한 소양과 많이 어긋나는 것이다.

② 사례형 시험의 경우:
사례형 문제는 총 4면에만 답을 쓰도록 되어 있다. 로스쿨 출범기의 원래 구도는 학교에서 심도 있는 법적 논증 방법을 이미 배웠으니 변시에서는 그 지식 유무를 가볍게 묻자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변시는 초기 기획자의 예상과 전혀 다른 시험이 되었다. 많은 경우에 사례형 1문항당 많아야 약 3줄 정도로 답해야만 모든 문항에 답을 할 수 있다. 형식은 사례형·서술형이되, 실질적으로는 단순하게 판례의 결론 묻는 것이다('사례형의 선택형화'). 그 결과 로스쿨 학생들은 대체로 판례를 비평적으로 읽는 것에 관심이 없다. 판례를 이용하더라도 그것이 법원리와 연관되고 추상화의 수준의 판례를 선택하여 출제해야 한다. 아울러 판례의 결론 자체를 정답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논증·응용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③ 기록형 시험의 경우:
각 실무영역에서 이용되는 모든 서면형식들을 출제·채점하는 데에서 오는 한계로 인해 기록형 시험은 재판실무 과목에서 작성하는 검토보고서를 쓰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존댓말로 쓰는 사례형 문제'라는 비판의 원인이기도 하다. 위와 같은 사정을 들어 기록형 시험 폐지 주장도 있다. 그리 되면 로스쿨에서 실무 관련 과목은 철저히 외면당할 것이다.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평가방식의 개선이다. 시험답안의 차이가 실제 실무능력에 대한 변별력을 반영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기록형 답안의 점수를 총점에 반영하기보다는 P/F 방식으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둘째, 학점이수제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현재 실무과목이 유명무실해진 것과 비교해 본다면 단순히 기록형 시험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효율적인 것이다.

< 3> 제3단계:
최종 단계의 개선안으로서 핵심은 크게 두 가지이다.
① 자료제공형 시험: 법률가에게 필요한 기본 능력은 자료를 신속·정확하게 검색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례형과 기록형 문제에 대하여 '오픈북 테스트'를 제안한다. 제공되는 자료는 모든 법조문과 판례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문헌들이다. 일선 법률가들과 동일한 환경에서의 문제 해결능력을 검증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채점작업은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사안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가능한 중요 주장과 논거들을 파악하고 있는지, 수험생이 취한 논증방식과 결론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연결되는지 등이 평가 대상이다. ‘모범답안’은 없다. 독창적인 답안에 대해서는 추가점수도 가능할 것이다. 결론보다는 ‘모범적인 논리성’에 점수를 주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한가? 채점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기준만으로 충분히 변별력 있는 출제와 채점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② 단말기를 통한 입력:
손으로 직접 서술형 답안을 작성하는 시험 형태는 수험생들에게 체력소모를 넘어 가학적이다.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답안을 작성하는 CBT(Computer Base Test) 방식은 수험생에게 현역 법조인과 동일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CBT 방식은 필체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을 염려가 없다는 점에서 채점결과에 대한 신뢰도 향상에도 기여한다. CBT 방식은 채점자의 피로도를 크게 낮추어 결과발표 시점을 당길 수 있다. CBT 방식 실행에서 기술적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장애사유는 되지 못할 것이다.


Ⅳ. 맺음말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가 정하는 교육이념이 로스쿨 마당에서 사라진지 오래이다. 로스쿨 출범 10년, 이제는 사회가 문제점을 공유하면서 개선책을 모색해야 한다. 변시 개선에 관한 이슈는 다양하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 근본적인 사항만을 다루었다. '맹목적 판례 암기'를 현행 변시의 핵심 문제로 지적하면서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단계별로 제시했다. 이는 실현가능성을 고려한 것이다. 변시는 AI 법률가와 공존하는 인간법률가의 핵심역량을 견인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변시의 기본방향은 '변호사시험법' 제1조로 필요·충분하며, 그 핵심은 변시가 검정시험이라는 것이다. 로스쿨의 커리큘럼, 주기별 로스쿨 평가제도, 주요기관의 교원파견 등 현행제도 또한 검정시험을 전제로 한 것이다. 과도기에서 사법시험 제도의 병존, 근본목적을 간과한 집단이기주의, 무책임한 국가행정, 로스쿨 당국자들의 안일한 미래 예측 등이 겹쳐 현재 변시는 심각한 병리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변시가 바른 방향으로 개선된다면 합격자가 2000명이어도 사회는 로스쿨을 신뢰할 것이며, 합격자가 1000명이어도 수험생은 이를 수긍할 것이다. 변시제도의 개선에 있어서 “시험이 아니고는 능력을 평가할 수 없다”, “학생들은 시험이 어려워야 제대로 공부한다”, “모든 사람이 합격하는 시험은 시험이 아니다”, “빠르고 준수한 필체도 능력이다” 등의 시각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필요가 있다.


명순구 교수 (고려대 로스쿨)



※ 이 글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2018년 연구보고서(명순구/홍영기, '법학교육 정상화를 위한 변호사시험 개선방안')에 기초한 것임.